1990년 수학 저널 The Mathematical Intelligencer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으로 뽑힌 ‘오일러의 공식(Euler’s identity)’에는 다섯 개의 상수가 등장합니다.[1] 덧셈의 항등원 0, 곱셈의 항등원 1, 원주율 π, 자연상수 e, 허수단위 i가 바로 그들입니다.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들을 하나의 등식으로 조화롭게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이 공식은 그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받습니다. 이 중 자연상수 e의 지수에 등장하는 원주율 π는 약 3.14의 값을 가지는 실수이며, 흔히 원의 지름에 대해 원주가 가지는 일정한 비율로 정의합니다.
Figure 1.오일러의 등식(Euler’s identity)
원주율 π는 ‘원주율’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 원이라는 기하학적 대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π가 무리수이자 초월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수학에서의 원의 보편성과 중요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는 원의 넓이나 구의 부피의 측정부터, 단위원(unit circle, 반지름의 길이가 1인 원)을 통해 삼각비를 확장시킨 사인함수와 코사인함수 등 삼각함수에서도 π는 매우 중요한 상수로써 등장합니다. 특히, 삼각함수를 다룰 때는 함수의 정의역과 공역의 차원을 일치시키기 위해 호도법을 사용하는데, 호도법에서는 평각 180도를 π로 정의하기 때문에 π는 각의 크기를 표현하는 척도의 의미도 가지게 됩니다. 이렇듯 π는 원과 각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써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π라는 수를 이러한 원에서의 기하학적 직관과 각도의 의미를 배제하고서도 정의할 수 있는데, 이번 월간글립에서는 오직 함수의 논리만으로 π를 유도해 정의하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2]
Figure 2. 다양한 도형의 공식에 등장하는 π[그림 1]
Figure 3. π와 호도법
우리는 특정한 함수에서 등장하는 한 상수를 π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우선, (식 1)과 같이 거듭제곱급수(power series) 꼴로 정의된 함수 E(z)를 생각해봅시다(형태가 익숙해 보여도, 일단은 모르는 척 정의해봅시다). 거듭제곱급수 꼴의 함수는 각 점 z에서의 함숫값이 무한합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z의 값에 따라 함숫값이 발산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함수는 실제로 모든 복소수 z에 대해 수렴하여 잘 정의됨을 간단한 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소수 전체의 집합에서 이 함수를 다루기로 해봅시다.
위와 같이 정의한 함수 E(z)는 몇 가지 좋은 성질들을 만족하게 됩니다. 특히, 이 거듭제곱급수는 모든 복소수 z에 대해 절대수렴(absolutely converge, 절댓값을 취한 값이 수렴)하므로 다음과 같이 계산을 통해 임의의 두 복소수 z, w에 대해 E(z)*E(w) = E(z+w)를 만족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E(0) = 1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z의 자리에 실수 x와 허수단위 i를 대입해 함수 E(ix)를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두 함수 C(x)와 S(x)을 각각 E(ix)의 실수부와 허수부가 되도록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이와 같이 정의한 C(x)와 S(x)는 실수값을 가지는 함수가 되는데, 여기서 C(x) = 0의 근 중 가장 작은 양수 근을 x0라고 하고, π를 2x0이라 정의합시다. 즉, C(π/2) = 0이게끔 π를 정의하는 것입니다(부록 a). 그러면 이와 같이 정의된 π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π와 일치하게 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소평면에서 복소수 z의 원점으로부터의 거리 |z|는 아래의 (식 3)과 같이 정의되는데, 임의의 실수 x에 대해 |(E(ix)| = 1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E(ix)들은 복소평면에서 원점으로부터 거리가 1만큼 떨어져 있게 되어, 복소평면의 단위원 위에 놓이게 됩니다.
한편, C(π/2) = 0이면 E(ix)의 크기가 1이 되야 하므로 S(π/2)의 값은 1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부록 b). 그러면, (식 2)를 두 번 반복 적용하여 E(2πi) = 1을 얻습니다. 즉, E(z +2πi) = E(z)*E(2πi) = E(z)가 되어 E(z)는 주기 2πi를 가지게 됩니다. 이를 C(x)와 S(x)의 정의에 적용하면, C(x)와 S(x)는 각각 주기 2π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0 ≤ x< 2π인 실수 x에 대해 실수 E(ix)와 복소평면의 단위원 위의 점은 일대일로 대응됩니다(부록 c).
Figure 4. 복소평면에서의 E(it) (0 ≤ t< 2π)의 자취
그러면 원의 둘레를 복소평면에서 γ(t) = E(it) (0 ≤ t<2π)가 가지는 자취인 γ의 길이로 생각할 수 있고, 이 길이는 선적분을 통해 계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식 4)와 같이 반지름이 1인 원의 둘레의 길이가 2π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π가 실제 원주율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모르는 척 우연히 정의하였던 함수들인 E(z), C(x), S(x)는 각각 지수함수 ez, 코사인함수 cos(x), 사인함수 sin(x)와 일치하게 됩니다. 실제로 위의 과정을 다시 돌이켜 살펴보면, E(x)는 지수함수의 대표적인 성질인 (식 2)를 만족하고, C(x)와 S(x)는 주기 2π를 가지며 |E(ix)| = 1은 sin2(x) + cos2(x)가 1이 됨을 의미합니다. 한편, x = π를 위의 식들에 대입하면 덤으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인 오일러의 공식 또한 얻을 수 있습니다.
원과 도형, 각도의 의미에서만 비롯되었다고 여겨진 π를 관점을 달리해 위와 같이 함수로부터 유도해낸 것처럼, 수학에서는 하나의 대상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해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원의 지름에 대한 원주의 비라고만 생각했던 원주율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거듭제곱급수 함수들의 행동양식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관계없어 보이는 대상들이 수식들로 연결되어 하나의 결론으로 깔끔하게 매듭지어지기 때문에 수학자들이 수학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독자 여러분들도 수학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이번 글로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부록 – 은근슬쩍 넘어간 수학적 비약들]
a. 이와 같이 ‘가장 작은 양수인 근’으로 어떤 수를 정의하려면, 이러한 근의 존재성을 우선적으로 확인하여야 합니다. 정의상 C(x)와 S(x)는 모두 연속이며 미분가능하므로, C(x)와 S(x)을 각각 미분하면 C’(x) = -S(x), S’(x) = C(x)를 만족합니다. 또한, C(0) = 1, S(0) = 0입니다. 만일 C(x) = 0인 양수 x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S’(x) = C(x)이고 C(0)=1이기 때문에 S(x)는 x>0에서 증가함수가 되고, 이는 모순을 일으킴을 간단한 적분 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C(x) = 0은 양수인 근 x를 가지고, 연속함수의 근들은 닫힌 집합을 이루기 때문에 ‘가장 작은’ 양수 근 x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b. |E(ix)|2 = (C(x) + iS(x))*(C(x) – iS(x))이므로, {C(x)}2 + {S(x)}2 = 1이 되어 실제로 S(π/2)의 값의 후보로는 -1와 +1이 가능합니다. S(x)이 값이 -1이 아닌 +1인 이유는 a에서 살펴봤듯 S’(x) = C(x)이고, C(x)는 0과 π/2 사이에서는 양수이므로 S(x)는 이 구간에서 증가하여 S(π/2)는 양수가 되어야 합니다.
c. 각 구간 [0, π/2), [π/2, π), [π, 3π/2), [3π/2, 2π)별로 미분을 이용해 C(x)와 S(x)의 증감과, 관계식 C2 + S2 = 1을 이용하면 유도할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1] Wells, D. (1990). Are these the most beautiful?. The Mathematical Intelligencer. 12. 37-41.
[2] Rudin, W. (1976). Principles of Mathematical Analysis. New York: McGraw Hill. pp. 176-184.
[그림 출처]
[그림 1] Freepik, https://www.freepik.com, www.flaticon.com
Written by GLEAP 9기 김수현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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