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구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여러분은 ‘분자’라고 하면 어떤 형태가 떠오르시나요? 주로 물, 에탄올 혹은 벤젠 등 다양하고 익숙한 분자들이 떠오를텐데요, 분자들의 세계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넓고 다양합니다. 그 중에는 아래와 같이 구조가 재미있는 모양의 분자들도 있고,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거대한 분자들도 있습니다.
그림1. 특이한 분자구조들[1]
이렇게 다양한 분자 형태들 중, 이번 월간글립에서 다룰 구조는 바로 ‘매듭’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신발끈을 묶는 방법, 등산 줄이나 목걸이 줄을 묶는 방법 등 다양한 종류의 매듭을 접하지만, 매듭이 있는 분자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초기 화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분자의 매듭구조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여러 구조의 매듭 형태의 분자들이 합성되었습니다. 이번 월간 글립에서는 매듭 형태의 분자들의 간단한 역사와 합성 방법, 그리고 구조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리로 연결된 분자, 카테네인(catenane)의 등장
화학자들이 하는 다양한 일 중 하나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구조를 가진 분자들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로 연결된 고리를 가진 분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분자들을 이용해 서로 고리를 만들려는 시도는 1912년도에 최초로 이루어졌지만,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러한 시도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2] 매듭을 가진 분자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매듭을 가진 분자 고리를 만드는 영역에 날개를 달아준 화학자는 장 피에르 소바주(Jean-Pierre Sauvage)로, 아래 그림과 같이 구리 이온을 이용해 두 분자 고리를 가까이 잡아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서로 연결된 고리 모양의 분자, 카테네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소바주는 카테네인을 합성하기 위해, 즉 두 개의 고리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고리의 재료가 되는 분자들을 금속 이온, 특히 2가 구리 이온을 이용해 서로 가까이 끌어당겨 다른 한 개의 고리 근처에서 연결하였습니다. 분자 고리를 만드는 재료들이 가까이 모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전자가 풍부한 분자들을 원래 있던 고리와 새로 만들 고리의 재료로 이용하고 전자가 부족한 금속 이온을 넣어주었습니다. 전자가 부족한 금속 이온과 전자가 풍부한 분자들은 서로 끌어당기려고 하기 때문에 고리 분자와 그 재료들이 서로 가까이 모일 수 있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고리의 재료들을 연결시키는 반응을 일으키면, 카테네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2. 구리 이온을 활용해 고리로 연결된 분자인 카테네인을 합성한 과정을
간략히 나타낸 모식도[3]
이를 통해 이전에는 10% 미만이었던 카테네인의 수득률을 40%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으며, 다른 과학자들 또한 금속 이온을 이용하는 방법을 활용해 훨씬 복잡한 구조의 분자들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3] 장 피에르 소바주는 이 연구를 통해 두 분자 이상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분자를 연구하는 ‘초분자화학’ 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4]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아래와 같이 한 가닥으로 구성된 세잎매듭 형태의 분자를 합성해냈고, 이는 매듭 구조를 가진 분자들을 합성하는 연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림 3. 소바주의 연구를 통해 이후 합성된 세잎매듭 분자[3][5]
다양한 매듭 구조를 구현하기 위한 화학자들의 노력
일반적으로 매듭 형태를 가진 분자라고 하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연구에 등장하는 세잎매듭 구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난 지금은 세잎매듭 형태보다 더 다양한 매듭 구조를 가진 분자를 합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학자들은 훨씬 다양한 종류의 매듭을 분류하였고, 화학자들은 이러한 형태를 분자로 구현하기 위해, 그리고 같은 매듭을 만들더라도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림 4. 현재까지 합성된 매듭 분자들의 구조[6]
기본적으로 매듭 형태의 분자들을 만들어내는 방법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탄소 골격에 전자가 풍부한 원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단위 분자를 전자가 부족한 금속 양이온을 이용해 가까이 접근시켜 결합을 만들어낸다는 기본적인 원리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이를 응용하여 훨씬 더 복잡해진 분자들을 합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2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이온과 분자의 상호작용을 이용한 자가조립을 통해 다섯잎매듭 구조(그림4의 Cinquefoil knot)을 가진 분자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7]
매듭 형태를 만들기 위해 두 개 이상의 분자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한 종류의 분자가 꼭 한 종류의 매듭을 만들라는 법도 없죠. 한 가닥의 분자만을 가지고도 3가지 다른 구조의 매듭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과도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한 종류의 금속 이온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란타넘, 구리 이온 두가지 이온을 사용하고 이러한 이온을 넣는 순서를 바꾸었을 때 다른 구조의 매듭이 되는 모습을 확인되었습니다.[8]
그림 5. 한 가닥의 분자로 세 가지 고리 만들기[8]
더 나아가서, 화학자들은 이온과 분자 사이 전자기적 상호작용을 활용하는 방법 말고도 소수성 상호작용을 이용해 분자들의 자가조립을 유도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9] 또한, 한 종류의 단위체의 자가조립을 활용하여 다양한 구조의 매듭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하며 화학자들은 끊임없이 매듭 구조의 분자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10]
그림 6. 한 종류의 단위체로 다양한 매듭 만들기[10]
자연계에서도 발견되는 매듭, 그리고 활용
분자들의 세계에서 고리와 매듭 구조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분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백질이나 DNA와 같은 생체 분자에서도 거대한 매듭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펩타이드 뼈대 부분이 꼬여 매듭이 있는 단백질은 1000개 이상이 현재 알려져있습니다.[11]
그림 7. 다양한 매듭을 가진 단백질[11]
또한 단백질과 함께 대표적인 생체 거대분자인 DNA에서도 매듭이 발견됩니다. 박테리아에서 매듭구조가 있는 플라스미드(박테리아 안에 존재하는 원형 DNA)가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생명과학자들은 DNA에서 매듭 구조가 발생하는 이유와 그 역할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 생명공학자들은 직접 DNA 구조를 조작하여 다양한 형태의 매듭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기도 하였습니다.[10]
그림 8. 플라스미드에서 발견되는 매듭[12]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이러한 매듭을 만들기만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듭 안에 나타나는 고리 부분에 특정 이온들이 선택적으로 잘 들어간다는 점을 이용해 이온들을 전달하는데 사용하려고 하기도 하고, 몇몇 반응에 대한 촉매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또한 매듭이 꼬이는 방향에 따라 입체이성질체를 가질 수 있기도 하므로 이성질체의 분리에 이용될 수도 있고, 그림5에 있는 새장 모양의 구조는 원하는 분자를 가두는 데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6]
그림 9. 매듭 형태를 가진 분자들의 다양한 활용 방법[6]
매듭 형태를 가진 분자들 중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분자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분자들이 굉장히 많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만들기 어렵거나 발견하지 못해 상상 속의 구조로만 존재하는 분자들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만들어내거나 찾아내지 못해 미지의 영역에 있는 분자를 찾고 활용할6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부록] 소수성 상호작용을 이용한 분자 조립
소수성 상호작용을 이용한 분자 조립[9]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참고문헌 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준비했습니다. 이 조립은 질소에 의해 양전하를 띄고 있으면서 aldehyde 작용기가 2개 있는 그림 10의 단위체 A와, hydrazide 작용기가 2개 있는 그림 10의 B단위체, 두 개의 단위체를 사용하여 이루어집니다. A의 질소 부분은 양전하를 띄고 있어 친수성을 띠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소수성을 띠고 있으며, H 분자의 박스로 표시된 부분 또한 소수성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수성 부분은 친수성 부분끼리, 소수성 부분은 소수성끼리 만나는 상황이 열역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에, 분자들은 이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이때 물 속에서 A와 H가 들어간다면, A와 H는 물과 접촉하는 소수성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구조를 가지게 되고, 이는 아래 그림 10에 나타난 것 같은 기본 단위체(이하 ‘모티프’)를 이룰 것입니다.
그림10. 소수성 상호작용을 이용한 분자 조립의 단위체[9]
열역학적으로 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분자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티프들끼리 모여 우리가 원하는 매듭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때 H의 박스 부분에 어떤 구조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조립되는 매듭 혹은 카테네인처럼 2개 이상의 고리가 연결된 분자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림 11에는 참고문헌에서 사용된 단위체 H의 종류 3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요, H1 단위체를 이용할 경우 최종적으로 카테네인 구조가, H2 단위체를 이용할 때는 세잎매듭 구조가 그리고 H3 단위체를 이용할 때는 솔로몬 고리라는 이름을 가진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H 단위체 구조에 따라 모티프가 조립되는 형태에 차이가 생겨 매듭 구조에 대한 선택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 11. H 단위체의 구조 변화에 따른 조립된 분자의 구조[9]
단위체 분자들이 잘 준비되어 있기만 한다면, A와 H 단위체들이 조립되어 모티프를 형성하고, 이들이 스스로 매듭이나 고리를 가진 분자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pH와 온도 조건이 맞춰진 물 속에서 3시간 이상 둔다면 매듭이나 고리를 가진 분자들이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기 때문에, 금속 이온을 사용하는 방법과는 새로운 방법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다만 이 참고문헌의 경우, 생성물의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결정을 얻어 구조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HPLC, MS, NMR 등의 기법을 이용하여 구조를 확인하였기 때문에 화학자들이 이러한 합성 방법들을 새로 시도하고 있다는 정도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ferences
[1] reaction chamber.org, wired molecules
[2] Heard, A.W., Speakman, N.M.A. & Nitschke, J.R. A ravel alliance. Nat. Chem. (2021). https://doi.org/10.1038/s41557-021-00776-1
[3] Nobel prize chemistry 2016,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2016/press-release/
[4]https://www.ibs.re.kr/scc/lounge/scienceKnowledgeLearnView.do?scienceLoungeNo=15700&dtaTy=003&langSe=kor
[5] Albrecht-Gary, A. M.; Meyer, M.; Dietrich-Buchecker, C. O.; Sauvage, J. P.; Guilhem, J.; Pascard, C. (2 September 2010). “Dicopper (I) trefoil knots: Demetallation kinetic studies and molecular structures”. Recueil des Travaux Chimiques des Pays-Bas. 112 (6): 427-428. Doi:10.1002/recl.19931120622
[6] Schaufelberger, F. Open questions in functional molecular topology. Commun Chem 3, 182 (2020). https://doi.org/10.1038/s42004-020-00433-7
[7] Ayme, JF., Beves, J., Leigh, D. et al. A synthetic molecular pentafoil knot. Nature Chem 4, 15–20 (2012). https://doi.org/10.1038/nchem.1193
[8] Leigh, D.A., Schaufelberger, F., Pirvu, L. et al. Tying different knots in a molecular strand. Nature 584, 562–568 (2020). https://doi.org/10.1038/s41586-020-2614-0
[9] Fabien B. L. Cougnon, Kenji Caprice, Marion Pupier, Antonio Bauza, and Antonio Frontera, A Strategy to Synthesize Molecular Knots and Links Using the Hydrophobic effect,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2018 140(39), 12442-12450. DOI : 10.1021/jacs.8b05220
[10] Atwood, J. L., Comprehensive Supramolecular Chemistry II ,Elsevier, 2017
[12] De Witt Sumners, DNA Knots: Theory and Experiments, Progress of Theoretical Physics Supplement, Volume 191, December 2011, Pages 1–19, https://doi.org/10.1143/PTPS.191.1
Written by GLEAP 10기 심재은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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