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금속화학의 응용
0. 들어가기 전에
화학은 다양한 하위 분야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중에는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이 있습니다. 유기화학은 유기물을 다룬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유기물, 천연물을 넘어 탄소 골격 바탕에 치환기들이 달린 다양한 분자들의 구조와 반응성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기화학은 주로 금속에 초점을 맞춰 금속이 형성하는 다양한 착물이나 결정들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둘은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금속과 탄소 골격의 분자는 적당한 조건에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두 학문이 융합하여 탄생한 분야가 바로 '유기금속화학(Organometallic Chemistry)'입니다. 오늘은 유기금속화학이 어떻게 발전하였고, 어떤 반응들을 통해 화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유기금속화학의 역사
기록상 남아있는 합성된 첫 유기금속화합물은 1760년 프랑스의 화학자 카데 드 가시쿠르(Cadet de Gassicourt)에 의해 합성된 카코딜(As2Me4)입니다. 그 이후로 비소나 규소와 같이 탄소와 공유 결합을 하는 원소부터 마그네슘이나 리튬과 같이 이온 결합을 하는 화합물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유기금속화합물들이 합성되었습니다. 이 중 몇 가지 화합물들은 노벨상의 주제로 선정되기도 하였는데요, 대표적으로 유기 마그네슘 시약(그리나르(Grignard)), 알켄의 중합에 사용되는 티타늄 기반 착물(지글러와 나타(Ziegler, Natta)), 새로운 방식의 탄소-탄소 결합을 형성할 수 있는 팔라듐 촉매(스즈키(Suzuki))가 있습니다.
그림 1. 왼쪽부터 그리나르, 지글러, 스즈키[1]
현대에 들어와서 유기금속화학은 더욱 발전하여 산업 전반에서 뛰어난 촉매를 개발 및 응용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표적인 유기금속들의 반응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점들이 특출난 것인지 알아볼까요?
2. 유기 리튬, 유기 마그네슘
비금속 원소 중에서 탄소는 전기 음성도가 낮은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양전하를 띠는 탄소가 음전하를 띠는 탄소보다 훨씬 흔합니다. 그런데 리튬과 마그네슘은 주기율표에서 1족, 2족의 금속 원소이기 때문에 유기금속 화합물을 형성할 때 탄소와 이온 결합을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탄소는 음이온이 됩니다. 탄소 음이온은 양전하를 띠는 탄소에 전자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양전하를 가지는 탄소들에 뛰어난 반응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유기 리튬과 유기 마그네슘을 활용하여 탄소-탄소 결합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즉, 분자의 뼈대가 되는 탄소 사슬을 구성 및 확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나르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림 2. 유기 리튬 시약의 예시[2]
3. 커플링 반응
이 반응은 유기금속화학이 유기화학에 기여한 최고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커플링 반응(coupling reaction)이란 전이금속 촉매를 이용하여 탄소 간 결합을 형성하는 반응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리튬, 마그네슘 기반의 탄소 음이온과 탄소 양이온의 반응으로 탄소-탄소 결합을 형성하는 전략은 크게 2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탄소 음이온이 첨가/치환되는 반응인 만큼 입체적/전기적 조건이 적절한 위치에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섭씨 -78도의 저온에서 철저한 비활성 조건을 갖추어 반응시켜야 하기에 실험적으로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전이금속을 이용한 커플링 반응을 사용하면 이러한 단점들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이금속들은 d 오비탈을 이용하여 유기화학의 기본 반응들인 첨가/치환/제거와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능케 합니다. 전이금속들은 활성화된 두 탄소-활성화기 결합을 깔끔하게 이어 붙여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두 개의 큰 탄소 골격이 깔끔하게 하나의 결합을 통해 연결(커플링 반응)되게 됩니다. 커플링 반응은 적당한 전이금속과 해당 금속이 활성화할 수 있는 적절한 활성화기가 필요하여 유기 리튬이나 마그네슘 시약들보다 반응 조건이 복잡합니다. 하지만 벤젠 고리 사이의 결합과 같이 기존에는 형성하기 매우 어려웠던 결합을 손쉽게 형성할 수 있는 점은 화학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도구가 생긴 것과 같습니다.
그림 3. 스즈키 커플링
커플링 반응은 실제 산업에서도 널리 응용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제약산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약물과 같이 생리 활성을 가지는 다양한 물질들은 벤젠 고리와 같은 방향족 고리를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합성에 있어 커플링 반응은 유용한 도구가 되어줍니다. 이렇게 뛰어난 커플링 반응을 개발한 스즈키(Suzuki), 헥(Heck), 네기시(Negishi)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4. 복분해
복분해(metathesis)란, 두 작용기가 각자 분해 후, 상호교환되어 재결합되는 반응을 일컫는 말입니다. 복분해를 이용하면 알켄이나 알카인을 서로 반토막 낸 후, 이어 붙일 수 있습니다. 복분해는 말단의 알켄/알카인을 이어 붙임으로써 기존에 구성하기 어려웠던 거대고리 분자를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반응입니다. 또한, 알켄/알카인 단량체의 연쇄적인 복분해는 중합체를 합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유기합성의 측면에서 복분해는 큰 고리를 가진 분자들을 손쉽게 합성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며, 산업적으로도 다양한 고분자나 약품을 소량의 촉매를 통해 빠르고 친환경적이며 효과적으로 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럽스(Grubbs)와 슈럭(Schrock)은 해당 분야의 촉매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2005년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림 4. 복분해의 예시[3]
5. CH activation
CH activation이란, 활성화기가 없는, 비활성 상태의 C-H 결합을 “활성화” 시키는 반응을 말합니다. 이는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최근 연구되기 시작한 분야로, 유기금속화학의 도움을 받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기존의 유기반응들은 주변의 치환기로 인해 전자가 한쪽으로 쏠린 “특수한” C-H결합 만을 반응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CH activation의 주요 전략은 전자 밀도에 변화를 줄 치환기가 없음에도 C-H 결합의 결합전자쌍이 금속의 비어있는 d 오비탈과 상호작용하는 agostic interaction을 이용하여 반응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CH activation이 주목받는 이유는 작용기가 없어 반응성이 없는 곳에 반응성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CH activation만으로 원하는 치환기들을 원하는 위치에 아주 선택적이고 빠르게 설치할 수 있어 유기합성의 괄목할 발전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림 5. 전형적인 CH activation[4]
6. 마무리하며
금속은 유기화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탄소와 다른 주족/비금속 원소들로는 이룩하기 까다로운 다양한 반응들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노벨상이 탄생한 이 분야는 현재에도 비대칭 합성법, alkene functionalization, dynamic kinetic resolution등 정말 많은 용도로 응용되고 연구되고 있답니다. 이런 굉장한 금속들의 능력은 d오비탈, 그에 따른 다양한 결합 수의 가능성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유기금속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때론 서먹서먹한 친구들을 “커플링” 시켜주기도 하고, 두 집단을 “복분해”하여 융화시키는 훌륭한 리더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References
[4] Soumya Kumar Sinha, Srimanta Guin, Sudip Maiti, Jyoti Prasad Biswas, Sandip Porey, and Debabrata Maiti, Toolbox for Distal C–H Bond Functionalizations in Organic Molecules Chemical Reviews 2022 122 (6), 5682-5841 DOI: 10.1021/acs.chemrev.1c00220
Written by GLEAP 11기 김병주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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