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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글립 vol.22 2022년 특별호] 은하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바리온 음향 진동과 그 활용


‘사회적 거리두기’는 COVID-19 창궐 이래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포괄적으로는 시설 이용 시간, 사적 모임 인원 등을 제한하여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사람들처럼, 드넓은 우주의 은하들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는것을 알고 계셨나요? 은하들 사이에 COVID-19와 같은 전염병이라도 확산하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은하간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인이 되는 바리온 음향 진동(Baryon Acoustic Oscillation)에 대해 알아봅시다.


바리온 음향 진동은 우주 초기 빛과 물질의 분리 과정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우주의 진화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대폭발(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초고밀도∙초고온의 한 점에서 탄생했고, 갓 태어난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뜨거웠습니다. 대폭발과 함께 빛, 그리고 전자와 쿼크 같은 물질이 생성되었는데, 아주 뜨거운 환경, 즉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빛이 물질로 바뀌고, 물질이 빛으로 바뀌는 쌍생성∙쌍소멸 과정이 일어납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질량-에너지 동등성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Fig 1. 우주의 진화 과정[1]>



<Fig 2. 쌍생성-쌍소멸[2][3]>


우주는 점점 그 크기가 커지면서 온도가 내려갔고, 물질들은 점차 큰 단위로 결합하였습니다. 마침내 우주 탄생 이래 약 40만 년 후, 쿼크가 결합한 양성자∙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여 원자가 형성되었고, 비로소 빛과 물질이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4]. 이때 더 이상 물질에 가로막히지 않고 자유롭게 전파된 최초의 빛은 우주 배경 복사(Cosmic Background, CMB)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빛과 물질이 완전히 분리된 이후로는 물질 역시도 더 이상 빛에 방해받지 않고, CMB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응집하여 별과 은하 같은 천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5].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은 크게 '일반 물질'과 '암흑 물질'으로 나눌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두 물질의 서로 다른 분포 양상이 은하 간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인이 됩니다. 일반 물질은 정확히는 3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바리온(Baryon, 중입자)을 뜻하고, 가장 대표적인 바리온으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습니다[6].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물체, 더 나아가 지구 같은 행성과 태양 같은 별은 모두 일반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면 암흑 물질(Dark Matter)이란, 빛을 흡수∙반사∙방출하지 않으면서 중력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물질입니다[7]. 즉 사람의 눈이나 광학 망원경으로는 관측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라는 뜻에서 암흑 물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반부에 서술했듯 초기 우주에서는 빛과 바리온이 서로 엉켜서 분리되지 못했고, 따라서 초기 우주의 밀도가 높은 지점을 중심으로 바리온은 빛과 함께 구 모양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반면 암흑 물질은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성질 덕분에 매우 뜨거운 초기 우주에서도 바리온과 달리 빛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밀도가 높은 지점을 중심으로 뭉쳐서 분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초기 우주의 암흑 물질 분포와 바리온 분포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암흑 물질은 대부분이 밀도가 높은 구 중심에 응집해 있지만, 바리온은 빛에 이끌려서 구 모양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입니다[8].



<Fig 3. 2차원에서 본 물질의 분포>

원 모양의 중심과 껍질에 대부분의 물질이 분포하고 있다.[9]


오랜 시간이 흐르며 우주는 서서히 냉각되었고, 앞에서 서술했듯이 우주 탄생 약 40만 년 후에 원자가 형성되며 마침내 빛과 바리온이 분리되었습니다. 바리온은 더 이상 빛에 끌려다니지 않고 구 모양 그대로 ‘얼어붙은’ 분포를 띠게 되었습니다[4]. 그 후 구 중심에 있는 암흑물질의 중력에 이끌려 바깥쪽의 물질이 중심으로 끌려오고, 반대로 중심의 암흑물질이 바깥쪽 물질의 중력에 의해 끌려가기도 하여 구의 중심과 껍질에 대부분의 물질이 분포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는 우주가 팽창을 거듭함에 따라 점차 커졌고, 현재는 그 반지름이 150Mpc, 약 4억 9천만 광년으로 추정됩니다[5]. 그리고 바리온∙암흑 물질의 이러한 분포 형태를 마치 음파가 사방으로 울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바리온 음향 진동이라고 합니다[9].



<Fig 4. 시간에 따른 구성 요소별 질량비 - 중심부로부터의 거리 그래프>

시간 순서는 왼쪽 위부터 지그재그 방향. 검은색이 암흑 물질, 파란색이 바리온[10]


바리온, 즉 일반 물질이 풍부한 천체인 은하의 분포를 살펴보면, 이들이 바리온 음향 진동 패턴을 따라 분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두 은하를 무작위로 골라 둘 사이 거리를 측정하고 이를 거리-분포확률 그래프로 나타내면, 전체적으로는 둘 사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해당하는 은하의 분포확률이 낮아지지만 거리가 약 4억 9천만 광년인 곳에서는 분포확률이 약간 높아집니다[4]. 4억 9천만 광년은 바리온 음향 진동에서 관측되는 중심 부근의 은하와 구 껍질 부근의 은하 간 거리를 나타내므로, 그래프는 전 우주의 은하 분포에서 바리온 음향 진동에 의한 패턴이 반복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Fig 5. 은하 간 거리-은하 분포 확률 그래프[4]>


바리온 음향 진동은 우주론 분야 연구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태양보다 훨씬 작은 달이 하늘에서는 태양만큼 커 보이는 것처럼, 바리온 음향 진동 패턴 역시 관측자와의 거리가 멀면 작은 크기로 보이고 가까우면 상대적으로 크게 관측됩니다. 그러나 모든 패턴의 실제 중심부-껍질 간 거리는 4억 9천만 광년으로 일정하므로, 관측된 겉보기 크기와 실제 크기를 비교하여 해당 패턴 내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바리온 음향 진동 패턴이 우주적 규모에서는 표준 잣대(standard ruler)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또한 도플러 효과에 의한 적색 편이(redshift)를 측정하여 해당 은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지, 즉 후퇴 속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8].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의 일환인 확장된 바리온 진동 분광 서베이(eBOSS) 프로젝트에서는 이렇게 측정한 은하까지의 거리와 은하의 후퇴 속도를 기반으로 우주 전역의 은하들 분포 지도를 작성하였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관측을 토대로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우주 탄생 후 약 30~80억 년간의 은하 분포도를 작성하였고, 이를 통해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가속 팽창의 에너지원인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의 존재 가능성을 관철하는 등 현대 우주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11][12].



<Fig 6. SDSS의 부속 프로젝트별 탐사시간대 범위[13]>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우주 전역에 분포하는 은하들이 무질서한 배열이 아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또한 그러한 규칙성을 만족하며 자리 잡은 오늘날 은하들의 위치가 태초의 아주 미세한 질량 분포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발견을 경이롭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수많은 관측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우주 형성 초기에 얽힌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발을 딛고 사는 우리 모두의 고향, 우주의 탄생과 진화 과정이 마침내 우리에게 완전히 알려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부록

<Appendix Fig 1. 입자 용어 분류 체계[14]>



<Appendix Fig 2. 기본 입자 목록[15]>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관측 가능한 물질과 상호작용은 기본 입자(elementary particles)들의 결합과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본 입자는 크게 물질을 직접 구성하고, 반정수 스핀을 갖는 페르미온(Fermions)과 입자 간 상호작용을 매개하고, 정수 스핀을 갖는 보손(Bosons)으로 구분됩니다. 페르미온 역시 쿼크(Quarks)와 렙톤(Leptons, 경입자)으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쿼크는 자연 상태에서 절대로 혼자 발견될 수 없다는 성질 때문에 2개, 혹은 3개의 쿼크가 결합하여 있는 형태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쿼크 묶음을 하드론(Hadrons, 강입자)이라 하고, 하드론 중 2개의 쿼크가 결합한 입자를 메손(Mesons, 중간자), 3개의 쿼크가 뭉친 입자를 바리온(Baryons, 중입자)이라고 합니다. 바리온의 대표적인 예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으며, 두 입자는 우주의 관측 가능한 물질 중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천문학 분야에서는 바리온이라는 용어 그 자체로 일반 물질, 정확하게는 관측 가능한 물질(visible matter)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References

[10] Daniel J. Eisenstein, Hee-jong Seo, Martin White., On The Robustness of The Acoustic Scale in The Low-Redshift Clustering of Matter, The Astrophysical Journal, 2007.

[12] Kyle S. Dawson, Jean-Paul Kneib, Will J. Percival, et al., The SDSS-IV Extended Baryon Oscillation Spectroscopic Survey: Overview and Early Data, The Astronomical Journal, 2016.


Written by GLEAP 10기 이재형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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