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배경 속 붉은 하트 아래 어깨동무를 한 두 사람, 바로 미국의 팝아티스트 키스 앨런 해링의 작품 <Untitled>이다. 새로운 회화 양식을 만들어낸 키스 해링의 작품은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으로 여전히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탄생과 죽음, 사랑, 전쟁과 평화 등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활동을 통해 상위예술과 하위예술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키스 해링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유독 강한 색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DayGlo on~'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Dayglo란 형광 안료인데, 키스 해링이 즐겨 사용한 DayGlo는 우리의 일상과도 꽤 가까이 있다.
그림 1. Keith Harring
그림 2. <Untitled>, Enamel and Dayglo On Metal, 1982
그림 3. <Untitled>, Enamel and Dayglo On Metal, 1985
Dayglo는 Switzer Brothers, Inc.(현재 Day-Glo Color Corp.)에 의해 개발된 형광 안료이다. 개발자인 Bob Switzer은 교통사고로 시신경이 손상되어 치료를 받으면서 어두운 방에서 지내던 중, 가족이 운영하는 약국에 있던 blacklight 램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Blacklight는 가시광선과 X선 사이의 진동수를 가진 자외선 영역의 빛이다. Switzer 형제는 형광 물질이 자외선을 흡수한 후 가시광선으로 재방출하여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유기 화합물과 플라스틱을 이용한 blacklight 형광 페인트를 개발했다.
그림 4. DayGlo 색상표
그림 5. DayGlo의 형광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DayGlo와 같은 형광(flourescence), 그리고 도깨비불과 같은 인광(phosphorescence)이다. 두 현상은 빛을 흡수한 다음 다시 방출하는 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형광은 빛(자외선 등)이 존재할 때만 나타나는 반면, 인광은 빛을 쪼여주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타나기 시작하여 빛이 없어지더라도 일정 시간 발광이 지속한다. 조금 더 화학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전자스핀의 방향’이 형광 또는 인광을 결정한다. 전자는 위, 아래 방향(↑, ↓)의 두 가지 스핀 방향을 가지고 있어 스핀 방향에 따라 에너지와 상태가 달라진다. 형광은 같은 스핀을 가진 상태들 사이의 전이에 의해, 인광은 다른 스핀을 가진 상태들 사이의 전이에 의해 일어나는 빛의 방출이다. 이제 전자가 2개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만약 두 전자의 스핀 방향이 ↑↓로 다르다면 ‘단일항(singlet, S)’이라고 부르고, ↑↑(또는 ↓↓)로 같다면 ‘삼중항(triplet, T)’이라고 부른다.
그림 6. 단일항과 삼중항.
그 다음, 위의 그림처럼 서로 다른 에너지 준위 두 개를 만들어서 높은 에너지에 E2, 낮은 에너지에 E1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자. 단일항의 전자 2개가 가장 안정한 상태는 두 전자 모두 E1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 상태를 ‘S0’라고 부른다. 둘 중 하나의 전자를 E2로 보낸 상태는 여전히 단일항이지만 에너지가 높아졌으므로, 이를 ‘S1’이라고 부른다. 이 때 S1의 E2 준위에 있는 전자의 스핀 방향을 뒤집으면 삼중항 상태가 되며, 이 상태를 ‘T1’이라고 부른다. 전자 스핀 방향이 서로 반대일 때 보다 안정하기 때문에 T1은 S1보다 에너지가 낮다.
형광으로 돌아와서, 빛을 흡수하는 과정은 '바닥 상태인 S0'→'들뜬 상태인 S1'으로 동일하다. 그 다음에 전자가 다시 빛을 방출하면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S1→S0로 떨어질 때 형광이 방출된다. 형광의 세기와 방출 파장은 분자 구조에 영향을 받는데, p 오비탈로부터 형성된 π 분자 오비탈 사이의 전이가 일어나는 방향족 화합물에서 형광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잘 형성된다. 이 때 전자가 바닥 상태로 떨어지며 방출되는 빛의 에너지는 언제나 흡수한 빛보다 에너지가 낮다. DayGlo 속 유기 분자의 전자 또한 자외선을 흡수하여 가시광선을 방출하게 된다.
그림 7. 형광과 인광
한편, 전자가 S1에서 T1을 거쳐 S0으로 내려온다면 인광이 방출된다. T1에서 S0로 내려올 때 전자의 스핀 상태가 바뀌면서 바닥 상태로 내려오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빛이 상대적으로 오래 나타난다.
1940년대 초, Switzer 형제는 가시광선 아래에서도 환한 ‘daylight fluorescence’를 개발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을 강하게 반사할 뿐만 아니라 blacklight fluorescence처럼 자외선을 받아 형광을 방출하는 안료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DayGlo는 안전 장비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재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날 교통 통제용 콘, 안전 조끼, 표지판과 같은 제품들은 모두 형광 안료로 착색되고 있으며 소방관, 공사장 근무자, 경비원의 유니폼에도 DayGlo가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안정하고 편리한 형광 표지로써 생태학 연구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많은 수의 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DayGlo 형광 마커를 사용한 연구[1]에서는 2004년 52마리의 붉은깃찌르레기(red-winged blackbird)의 깃털에 DayGlo 마커로 표시한 후 수명을 모니터링했다. 254일 후 생존하는 31마리의 개체 모두의 신체 부위에서 표지가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 다른 연구[2]에서는 시추 과정에서의 해양 오염을 분석하기 위한 형광 표지로 DayGlo를 사용하여 오염 물질의 농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그림 8. 해양 오염 분석에 사용된 DayGlo SPL-19N
그림 9. 붉은깃찌르레기
DayGlo는 저렴하고, 연구 과정에서 여러 척도로 적용하기 쉬우며, 동물에 해를 입히지 않고 다양한 종에 대해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도 일상과 연구 현장에서 DayGlo를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참고문헌 및 그림 출처]
[1] Tupper, S. K., Cummings, J. L., & Engeman, R. M. (2009). Longevity of DayGlo fluorescent particle marker used to mark birds in flight pen and field. Wildlife Research, 36(4), 319-323.
[2] Friese, A., Kallmeyer, J., Axel Kitte, J., Montaño Martínez, I., Bijaksana, S., Wagner, D., & ICDP Lake Chalco Drilling Science Team and the ICDP Towuti Drilling Science Team. (2017). A simple and inexpensive technique for assessing contamination during drilling operations. Limnology and Oceanography: Methods, 15(2), 200-211.
Written by GLEAP 9기 이석영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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