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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글립 vol.34 2023년 특별호] Pray for Türkiye & Syria

2023년 2월 6일, 현지시각 오전 4시 17분, 규모 7.8에 달하는 강진이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이로부터 약 9시간 뒤, 이전 지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규모 7.5의 또다른 강진이 발생하였으며, 지진 발생 2주가 지난 현재까지 규모 6.7, 6.3에 이르는 크고작은 여진들이 잇따라 피해와 공포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잇달아 일어난 두 강진으로 인해 건물과 도로가 크게 훼손되면서 튀르키예 뿐만 아니라 시리아 북부의 접경 지역에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지요. 이번 월간 글립 특별호에서는 이토록 큰 피해를 남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이 어떤 환경에서 발생했고, 왜 피해가 컸는지, 대비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관심이 높아진 한반도 지진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곁들여보았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I. 2023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어디서, 왜 발생했을까?


이번 지진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먼저 지진이 정확히 어떠한 현상인지 간략히 설명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지진이라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땅에 있는 균열을 따라 양쪽 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쌓였던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이 균열을 ‘단층 (fault)’이라고 하고 이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응력 (stress)’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땅에 균열은 왜 있고, 에너지는 왜 쌓이는 것일까요?


1. 판구조론, 그리고 지진 발생의 원리


우리가 밟고 서있는 땅은 하나의 연속적인 표면이 아니라 사실 ‘판 (plate)'이라고 불리는 작은 조각들이 서로 맞물려있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판들은 지하 더 깊은 곳의 뜨거운 맨들 (mantle)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때로는 한 판이 다른 판 아래로 파고 들어가기도 하고, 타고 오르기도 하며 수평적으로 미끄러져 지나가기도 합니다. 이 이론을 ‘판구조론 (plate tectonics)’이라고 합니다. 이 움직임은 1년에 수 mm 에서 수십 mm 정도로, 손톱이 자라는 속도와 비슷하게 느리기 때문에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느린 움직임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쌓이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판의 경계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표면 사이에는 마찰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방향의 힘이 작용한다고 해서 바로 미끄러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무줄을 연결한 나무도막을 사포 위에서 끈다면 이 나무도막은 어느 정도 시간동안 정지 상태를 유지하다가 응축된 힘이 특정 값을 넘어가면 갑작스럽게 끌려갈 것입니다 (영상 1 참고). 지진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응축된 힘이 마찰력으로 유지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두 땅이 미끄러지면서 그간 쌓였던 에너지를 지진파의 형태로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2.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원인, 동아나톨리아 단층


이와 같이 지진이 일어나려면 경계면을 공유하는 두 땅이 서로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응력을 쌓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앞서 말씀드린 판의 경계는 지진이 발생하기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불의 고리 (ring of fire)’ 역시 태평양을 따라 발달한 연쇄적인 판의 경계부이며, 때문에 지진과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의 고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역시 ‘동아나톨리아 단층 (East Anatolian Fault)’이라 불리는 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사실 튀르키예는 지질학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지역에 위치합니다 (그림 1). 터키의 대부분이 속한 아나톨리아 판 (Anatolian plate)은 북쪽으로 유라시아 판 (Eurasian plate),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판 (African plate), 그리고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판 (Arabian plate)과 맞물려있습니다. 이중 동쪽으로 아라비아 판과의 경계에 발달한 단층대가 바로 동아나톨리아 단층입니다.


3. 강력했던 원투펀치: 규모 7.8 지진, 그리고 9시간 뒤의 규모 7.5 지진


2월 6일, 현지시각 오전 4시경에 발생한 첫 강진인 규모 7.8 지진은 말 그대로 동아나톨리아 단층 바로 옆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보통 거대한 단층은 한 줄기로 있기보다는 잔 가지가 뻗어있는 형태로 발달하게 되는데, 이 중 한 가지에서 발생한 뒤 본래의 거대한 줄기로 역 진행한 형태를 띱니다. 이 지진과 같이 큰 지진들은 보통 하나의 점에서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기보다는 2차원의 단면을 따라 에너지를 방출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이 강진의 경우 대략 가로로 180 km, 세로 20 km에 육박하는 면적이 에너지 방출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1]. 비교를 위해 말씀드리면 이 가로 길이는 한반도 동서 평균 폭인 300 km의 절반보다도 깁니다[2]. 하지만 더 최악이었던 것은 이로부터 약 9시간 뒤 발생한 또다른 강진인, 규모 7.5의 지진입니다[3]. 이미 이전 강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터라 잇다른 강진은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규모의 강진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경우 뒤따른 지진을 ‘여진 (aftershock)’보다는 유사한 특성을 공유하는 별개의 지진이라는 의미로 ‘이중지진 (earthquake doublet)’이라고 분류하고는 합니다.


4. 2023년 강진, 동아나톨리아 단층의 데뷔 무대였나 컴백 무대였나


아마 많은 분들이 튀르키예에서 큰 지진이 난다는 사실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비록 대중적으로 유명한 지진 발생 지역은 아니었으나, 동아나톨리아 단층은 거대한 단층답게 활발한 지진활동을 보여왔습니다. 가깝게는 2020년에도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바가 있으며, 이 외에도 역사적으로 많은 지진이 발생해왔습니다 (그림 1). 즉, 이번 강진은 동아나톨리아 단층의 데뷔 무대가 아닌 컴백 무대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지진들에 비해 유독 이번 지진의 피해가 컸는지, 이렇게 유명한 지진 발생 위험지역이라면 왜 제대로 대비되지 못했는지,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드실겁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하나하나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1. 튀르키예 인근의 지질학적 환경과 지진 발생사. 원의 크기는 규모, 색깔은 진원 깊이를 나타낸다. (이미지 출처: Dr. Juddith Hubbard 트위터 계정[4])


II. 유독 컸던 피해, 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유독 큰 피해 규모입니다. 지진 발생 한 달여 지난 지금, 이미 사망자만 5만 명 이상, 부상자는 13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됩니다[5]. 2011년 동일본 대지진때는 규모가 9.1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했음에도 사상자가 2만여 명에 머물렀고[6], 유사한 지질학적 환경에서 발생한 규모 7.1의 2019년 리지크레스트 지진도 사상자 26명에 그치는 등 훨씬 적은 피해를 일으켰습니다[7]. 대체 큰 피해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1. 지진의 절대적 크기: 규모


지진의 크기와 피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지진의 절대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규모 (magnitude)’와 지진 피해 정도를 나타내는 ‘진도 (intensity)'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규모는 말 그대로 해당 지진이 방출한 에너지의 크기를 추정한 값으로, 이론적으로 어디서 측정했느냐에 독립적으로 하나의 지진에는 하나의 규모 값이 존재합니다. 다만 사람이 측정하는 일이다보니 오차가 존재하긴 해서 발표 기관에 따라서 숫자가 조금씩 다른 경우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인간의 계산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순 오차일 뿐입니다. 이러한 규모는 발생한 에너지를 지수함수적인 관계를 이용해 묘사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규모 사이의 에너지 차이는 훨씬 큽니다 (그림 2).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최대 규모 지진인 경주지진 (규모 5.8)과 이번 튀르키예 지진(규모 7.8)이 방출한 에너지의 양을 비교하면 1000배가량 차이가 납니다. 눈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훨씬 크지요?

그림 2. 지진 규모에 따라 방출하는 에너지와 이에 상응하는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다른 현상들을 예시로 보여주는 그림.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방출한 에너지도 지진 규모로 치면 7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미지 출처: 미지질조사국 (USGS)[8])


2. 지진의 체감적 크기: 진도


하지만 이와 달리 피해의 측면에 더 집중하는 수치인 진도는 기본적으로 지진 발생 이후에 피해 상황을 기반으로 집계되며,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른 값을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날씨로 치면 체감온도 같은 것입니다. 같은 온도라도 빌딩이 많고 강한 바람이 부는 지역에서는 더 춥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진도는 어떤 요소의 영향을 받을까요? 우선, 당연하게도 절대적으로 ‘강한', 즉 규모가 큰 지진일수록 큰 피해를 일으키기 쉬울 것입니다. 지진 발생 위치와 가까울수록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고, 멀어질수록 피해가 적어질 것이라는 점 역시 쉽게 추론 가능합니다. 또 금방 생각할 수 있는 요소로는 내진 설계 등의 공학적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순수과학적인, 지진학적 입장에서 두 가지 요소를 더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조금 더 풀어 말해 그 지역 땅의 지하 구조입니다 (geological strurcture/local site effect). 지하에 아주 부드럽고 연약한 진흙같은 물질이 있는지, 아주 단단한 바위로 구성돼있는지, 혹은 암석이 상대적으로 어린지 오래되었는지 등에 따라서 지진파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마치 방음벽처럼 지진파가 스스로 쇠퇴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에는 지진파를 가둬 몇 배로 긴 시간동안 울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지진의 피해를 미리 가늠하고 대비함에 있어서 지하 구조 탐사는 아주 중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진 전달의 방향성입니다 (rupture directivity; 그림 3). 이제까지 관찰된 많은 지진들이 단층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는 더 잘 진행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잘 진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지진 발생지에서 멀다고 반드시 안전하지도, 가깝다고 반드시 위험하지도 않은 것이지요.

그림 3. 지진 전달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 서로 다른 지진(왼쪽: 1998 산 후안 바티스타 지진; 오른쪽: 2007 피에몬테 지진)의 최대지반가속도 (peak ground acceleration; PGA) 지도. 지반 운동을 보여주는 최대지반가속도가 지진 발생지인 빨간 별을 기준으로 균등하게 나타나지 않고 한쪽으로 쏠려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미지질조사국 (USGS)[9])


3. 그렇다면 이번 지진은?


이번 지진이 왜 유독 큰 피해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유는 여전히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번 지진은 유독 건물 붕괴의 형태를 많이 보였는데, 건물 진동과 공명하기 좋은 장주기의 움직임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내진설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해보입니다. 지진이 인류에게 미치는 피해는 대부분 진동 그 자체보다도 그 진동이 불러일으키는 건물의 붕괴나 산사태, 혹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화재, 감전/단전, 기반시설 붕괴 등의 2차적 요소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잦은 지진, 큰 지진이 예상되는 거대 단층대에 위치한 이 지역의 내진설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번 지진에 의한 피해, 대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III. 대비할 수는 없었을까?


앞서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동쪽에 위치한 동아나톨리아 단층에서 발생했음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튀르키예에는 동아나톨리아 단층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나톨리아 판이 유라시아 판과 만나는 북쪽 경계에는 또다른 거대한 단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 북아나톨리아 단층 (North Anatolian plate)이라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많은 이목이 동아나톨리아 단층보다 북아나톨리아 단층에 쏠려있었고, 따라서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1. 관심에서 벗어났던 지진, 왜?


첫 번째로는 단층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림 4에는 북아나톨리아 단층과 동아나톨리아 단층이 함께 보이는데요, 색깔이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더 많이 변형되고 있는 지역을 나타냅니다. 언뜻 봐도 북아나톨리아 단층이 훨씬 붉게 나타나있고, 변형이 많다는 것은 더 큰 응력이 쌓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렇다보니 동아나톨리아 단층에서 빠른 시일 내에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습니다. 동아나톨리아 단층이 지나가는 곳 인근에는 대도심이 위치하지 않은 반면, 북아나톨리아 단층의 서쪽 끝으로는 튀르키예의 대표적 도시인 이스탄불이 위치합니다. 때문에 가뜩이나 위험해보이는 단층이 대도심 바로 옆으로 지나가니, 상대적으로 북아나톨리아 단층에 관심을 쏟는 것이 더 중요해보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지진활동도 북아나톨리아 단층을 따라 더 큰 지진들이 자주 발생했었고, 1999년에는 규모 7.6의 강진이 이스탄불 바로 인근의 이즈미트 지역을 타격하여 큰 충격을 안긴 적도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잠복 단층 (blind fault)’의 활성화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지진은 단층이라는 땅의 균열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단층이 숨어있는지 측정하는 것이 지진의 위험성 평가의 첫 걸음입니다. 이를 위해서 현대 지구물리학자와 지질학자들은 위성 자료, 과거에 발생한 지진 위치, 표면으로 뻗어있는 단층의 흔적 등을 토대로 ‘단층 지도 (fault map)’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단층이 지표면까지 뻗어있는 것이 아니고, 또 모든 단층이 현재 활발히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서 지하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현대 과학 기술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잠복 단층들이 더러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지진이 난 뒤에야 그 곳에 단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지진의 두 번째 강진인 규모 7.5의 지진 역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잠복 단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됩니다. 즉, 관심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 애초에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었던 셈입니다.

그림 4. 튀르키예 인근의 변형률 텐서의 2차 불변량 (2nd invariant of strain rate tensor). 값이 클수록 지역적으로 변형률이 높음을 의미하며, 이는 더 많이 변형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Weiss et al. (2020)[10]).


2. 그렇다면 그저 두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여느 대규모 재해가 그렇듯,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뉴스를 작성하며 찾아보니 놀랍게도 튀르키예 정부에서 2018년에 이미 ‘지진 재해 평가 지도 (earthquake hazard map)’를 제작한 바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11]. 지진 재해 평가 지도는 현재 알려진 단층의 위치,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특정 지역이 얼마만큼 흔들릴지에 대한 추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지도는 공학적 설계와 정책적 대비 등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발행한 이 지도를 보면 동아나톨리아 단층은 북아나톨리아 단층만큼이나 짙은 색으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위험한 단층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힘없이 쓰러진 건물들은 이 수치가 공학적·정책적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3. 지진의 전조현상: 예측·예보는 불가능한 것인가


정치적 문제를 떠나 조금 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당연하게 이 질문이 당연히 들 것입니다. '지진의 예측·예보는 정말 불가능한가?' 대지진 이후 동물들의 이상행동 등이 보고되며 지진의 전조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졌습니다. 분명 지진이 일어날 때 자주 보고되는 현상이니 어떤 식으로 관계가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지진의 전조현상’으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1) 모든 지진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거나 최소한 유사한 특징을 가지는 지진에서는 반복적으로 관측되어야 하고, 2) 이 발생 빈도가 지진과 관련 없는 다른 환경적 요소 (예: 계절성 이동) 등과 구분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 3) 둘을 연관지을 수 있는 과학적 원리가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이러한 기준을 모두 충족된 현상이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반복적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전조현상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특정 현상에 대한 설명은 존재합니다. 지진 발생 직전 강아지가 짖거나 새들이 날아가는 현상은 동물들이 ‘P파 (P-wave)’를 감지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P파는 지진 발생 이후 가장 먼저 도달하는 지진파인데, 보통 사람이 느낄 만한 진동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람에게 느껴지고 건물에 피해를 입히는 ‘S파 (S-wave)’ 및 ‘표면파 (surface wave)’는 P파 도달 수 초에서 수 분 후 도착합니다. 따라서 P파가 도달하였을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감각이 예민한 동물들은 느끼고 반응할 수 있으며, 잠시 뒤 발생하는 큰 진동을 관찰한 사람들이 동물의 이상행동을 전조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4. 지진 조기 경보: 새로운 희망


특정 지역의 지진 발생을 예측하는 것은 마치 인간의 질병을 예측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명의일지라도 내가 암에 걸릴지 아닐지, 걸린다면 언제쯤 걸릴지, 금방 나을 수 있는 가벼운 암일지 아니면 아주 치명적인 암일지 등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현재 환자의 생활 방식과 가족력 등을 기반으로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정도를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재해 평가 지도처럼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 지진 발생시 피해에 취약한 지역 등을 추려 미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현대 과학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미국, 대만 등의 소위 지진 선진국들을 필두로 ‘지진 조기 경보 (earthquake early warning)’ 시스템이 상당히 발달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조기 경보의 기본 원리는 앞서 말씀드린 P파를 빠르게 감지하고, 해당 지진의 피해 범위를 대략적으로 빠르게 산정하여 인류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S파/표면파가 도달하기 수 초에서 수 분 가량 앞서 조기에 경보를 내리는 것입니다. 수 초에서 수 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 대피 훈련과 동반된다면 해당 시간 동안 재난 가방을 챙겨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긴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하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정부 기관과 협력하여 학교나 공공기관에 자동화된 센서를 설치하여 경보 발효와 즉시 기관 전체의 가스 밸브가 잠기게 한다던지 교실·사무실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게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해보일 지 몰라도 이는 가스 누출로 인한 2차 화재, 입구의 변형으로 문이 열리지 않아 건물에 고립되는 상황 등 실질적인 피해 예방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한 전조현상이 발견되어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도입이 가능한 만큼, 아직은 모호한 완전한 예측보다는 조기 경보에 초점을 맞춰 이를 발달시키고, 관심 지역에 맞게 최적화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가 아닐까요?


IV.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한반도의 타산지석으로

다른 나라에서 큰 지진이 난 이후에 본국의 실정을 살펴보고 점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지진 안전국이라는 인식 아래 지진 관련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은 포항·경주 지진 이후 많은 지진계가 설치되고 연구인력도 많이 투입되며 지진학적 데이터베이스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지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경각심도 높아진 점은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큰 관심에 따라 오는 과도한 두려움 혹은 루머 등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1.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한반도의 지진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우선 ‘한 지진이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의 지진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재 매우 활발한 연구 분야 중 하나입니다만, 아쉽게도 명확한 해답은 아직 얻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들은 대부분 통계적인 접근을 취하게 되는데, 원거리에서 큰 지진이 발생한 이후 특정 지역에서 지진 발생 횟수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지진 발생 횟수는 규모가 작아질 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통계는 대부분 ‘큰 지진의 위험성이 커지는가’ 보다는 ‘작은 지진이 더 많이 발생 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큰 지진의 기저에는 너무나 다양한 요소가 자리하고 있어서 그 영향을 단순히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멀리 떨어진 큰 지진이 또다른 큰 지진을 야기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대답은 '잘은 모르지만 희박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한반도 대지진 가능성?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지진 규모는 약 6.2, 연구자에 따라 최대 7.0 정도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12]. 절대적인 수치로 보았을 때 대지진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상대적으로 작은 지진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대비되어있는지의 정도가 피해 규모를 크게 좌우할 수 있음을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난 포항·경주 지진 이후 우리가 점검한 취약점들이 제대로 개선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지진 발생시 행동 요령 등 지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걸음일 것입니다.


V. 마무리하며


이렇듯 이번 특별호에서는 2023년 2월에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지진에 대해, 그리고 지진학 전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큰 교훈을 남긴 한 사진을 공유드리며 글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바로 처참히 무너진 건물들 사이 홀로 창문 하나 깨지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는 토목 공학 협회 (Chamber of Civil Engineers) 건물의 사진입니다 (그림 5). 아마도 이 건물은 적절한 내진 설계가 이루어져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때 재해는 배가 되고, 도시에, 혹은 국가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대비할 수 있을 때 대비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림 5. 튀르키예 토목 공학 협회 (Chamber of Civil Engineers) 건물의 모습. 처참히 무너진 주변 건물의 잔해 속에서 창문 하나 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r/Damnthatsinteresting 레딧[13])

 

References


[1] 미지질조사국 (USGS), M 7.8 - Kahramanmaras Earthquake Sequenc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earthquake.usgs.gov/earthquakes/eventpage/us6000jllz/executive

[2] 국토연구원 전자도서관, 국토의 위치와 면적,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3] 미지질조사국 (USGS), M 7.5 - Kahramanmaras Earthquake Sequenc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earthquake.usgs.gov/earthquakes/eventpage/us6000jlqa/executive

[4] Dr. Juddith Hubbard 트위터,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twitter.com/JudithGeology/status/1622475625633050624

[5] 영문 위키피디아, 2023 Turkey–Syria earthquak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6] 영문 위키피디아, 2011 Tōhoku earthquake and tsunami,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en.wikipedia.org/wiki/2011_T%C5%8Dhoku_earthquake_and_tsunami

[7] 영문 위키피디아, 2019 Ridgecrest earthquakes,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en.wikipedia.org/wiki/2019_Ridgecrest_earthquakes#:~:text=The%20July%202019%20Ridgecrest%20earthquakes,earthquakes%20reveal%20two%20fault%20zones.

[8] 미지질조사국 (USGS) Yellowstone Volcano Observatory, Graph showing earthquake magnitudes and equivalent energy releas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www.usgs.gov/media/images/graph-showing-earthquake-magnitudes-and-equivalent-energy-release

[9] 미지질조사국 (USGS), What is Directivity?,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https://earthquake.usgs.gov/data/rupture/directivity.php#:~:text=Directivity%20is%20caused%20by%20the,surface%20projection%20of%20the%20rupture.

[10] Weiss, J. R., Walters, R. J., Morishita, Y., Wright, T. J., Lazecky, M., Wang, H., ... & Parsons, B. (2020). High‐resolution surface velocities and strain for Anatolia from Sentinel‐1 InSAR and GNSS data.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47(17), e2020GL087376.

[11] Official website of Republic Of Turkey Ministry Of Interior Disaster And Emergency Management Presidency, Turkey's New Earthquake Hazard Map İs Published,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12] 연합신문, 기상청 “한반도에서 발생 가능한 지진의 최대규모는 6.2”, 작성일 2017년 11월 22일,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13] r/Damnthatsinteresting 레딧 (Reddit), Chamber of Civil Engineers building is one of the few buildings that is standing still with almost no damag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영상 1] Can rock bend? Demonstration of Elastic Rebound in rocks (educational), by IRIS earthquake science, 마지막 접근 2023년 3월 12일 오후 7시:


Written by GLEAP 5기 윤지나
Edited by GLEAP 학술팀·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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